[들을 짓는 사람+들] ILO 190호 협약과 국내법의 거리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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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센터 들의 2026년 두 번째 회원 모임 <들판>이 열렸습니다. 이번 모임의 주제는 전 세계 최초로 일터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을 선언한 ‘ILO 제190호 협약’이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그저 '일과 노동과 관련된 주제'라는 이야기만 듣고 덜컥 준비팀에 합류했던 터라, 처음에는 이 협약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준비를 하면서 알게 된 'ILO 제190호 협약'은 고용 형태나 계약서의 종류와 상관없이, 인턴이나 구직자, 자원봉사자 등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폭력과 괴롭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한 국제 표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아직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국제사회의 약속을 우리 법으로 공식 인정해 지키겠다는 '비준' 도장을 찍지 않은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우리의 현실 법 제도는 여전히 정규직 중심의 좁은 테두리에 갇혀 있고, 수많은 일하는 사람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방대하고 낯선 개념을 공부하며 세션을 준비하다 보니, 저는 초반에 갈피를 많이 잡지 못해 긴 시간 헤맸습니다. 토론을 이끌어갈 적절한 사례를 찾는 것도 막막했습니다. 그때마다 은채님과 수정님이 자세한 설명으로 저를 이끌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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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요안나의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었을까?"

"왜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건의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었을까?"에 대한 이야기로 문을 열었습니다. 고인의 비극을 보며 마음이 먹먹했고, 동시에 너무나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괴롭힘이 명백히 존재했다고 공식 발표까지 했음에도 가해자들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직장 내 괴롭힘 금지)가 오직 법이 정한 '사용자'와 '근로자'의 협소한 경계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민낯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오요안나님은 계약서상 프리랜서로 분류되었기에 법적인 보호망을 적용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정규직의 울타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노동자성을 지워버리고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는 현실을 보며, 지금의 법이 가진 한계를 직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ILO 제190호 협약이 지금의 국내법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세 가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가정폭력 피해로 인해 쉼터에 거주하며 어렵게 장거리 출퇴근을 이어가던 한 상담원의 이야기였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제 마음 한구석에는 '아무리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개인의 사정이나 아픔을 왜 회사 업무 공간까지 끌고 오지?'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오로지 생산성과 효율성만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일터의 문법에 젖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ILO 협약으로 인해 ‘일의 세계’가 달라지면 그럼 어디까지 회사에서 해줘야 해? 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일터에 '육아휴직'과 '돌봄휴가'가 존재해야 하는 것처럼, 한 인간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지 않도록 일의 세계가 안전망이 되어 배려하고 돌보는 것이 마땅한데, 저도 점점 ‘효율’만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협약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가정 폭력을 단순히 사적인 비극을 뜻하는 'Family(가족)'의 문제로 묶어두지 않고, 노동자의 삶을 흔드는 지배와 억압인 'Domestic(친밀한 관계 전반의 폭력)'으로 바라본다는 점이었습니다. 피해 사건의 사후 구제나 보상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상황으로부터 즉시 단절되어 안전하게 일할 '자유'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 이전과는 큰 차이점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소규모 사업장의 젠더 괴롭힘 현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 때, 모임 중 한 활동가분이 나눠주신 "피해자 중심주의가 현실의 법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데요, 인권의 감각으로 보면 4명이 일하는 작은 일터이든, 타인의 병실 안에서 일하는 간병 노동자이든 괴롭힘을 당하는 고통의 본질은 똑같지만, 현실의 법은 사업장 규모(5인 미만)나 계약 형태 같은 형식적인 조건을 먼저 따졌습니다. 고통의 유무가 아니라 사업장의 크기나 직종으로 인권의 자격을 ‘선별’하는 듯한 법의 한계를 실감하며, 왜 우리가 직장을 넘어 더 넓은 '일의 세계'의 확장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희롱 괴롭힘 사건의 신고 과정에서 비밀유지가 깨지고, 도리어 하급자가 정당한 저항을 했다는 이유로 '역괴롭힘(을질)' 가해자로 몰려 고소당한 일터를 살펴보았습니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프라이버시권(비밀유지)'과,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위험 요소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알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정교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고민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아가 약자의 정당한 신고와 저항을 도리어 '을질'이라는 프레임으로 묶어 입을 막으려는 백래시를 보며, 이것을 개인 간의 갈등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일터 내부의 권력 불균형과 소통 구조를 뜯어고쳐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대화 동안 그날의 참석자 모두가 흐트러짐 없이 집중하여 들었고, 사례 속 논의 과정을 통해 좀 더 ILO 협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참석해주신 분들의 나누고 싶은 이야기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부득이하게 '1분 발언권'을 제한을 했을 정도로 열기가 가득했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전할 권리가 있다는 입체적인 관점과 인권적인 관점을 계속해서 말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둘러싼 일터의 이야기가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으며, 모든 노동의 존엄이 지켜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관심을 놓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며 그 자리를 마무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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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두 번째 들판을 준비하며 준비팀에서는 ‘이 방대하고 어려운 내용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하는 고민이 계속 있었고, 저 역시 갈피를 많이 잡지 못해 긴 시간 헤맸고 사례를 잘못 찾기도 했습니다. 저처럼 관심은 있지만, 내용에 대해서 파악이 어렵고 답답한 분들도 있을거라 생각하는 마음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일상에서 쉽게 나누기 어려웠던 주제들을 들판에 모여 같이 이야기 하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9월 들판에서 다시 만나요!

*글쓴이 | 이샘(활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