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짓는 사람+들] ‘배달꾼’에게 배운 후원의 마음

20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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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주점을 앞두고 마음이 초조해졌다.

여기저기 연락하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가족의 대소사가 겹쳐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재정특별위원회 소통방에는 후원 티켓 소식과 응원의 마음들이 오가는데, 나는 그 흐름에 함께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SNS에 ‘들’의 이야기를 급하게 올렸다. 사실 익명의 누군가에게 후원을 요청하는 일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후원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건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들’이 어떤 곳인지, 왜 이 단체가 오래 살아남아야 하는지만큼은 꼭 전하고 싶었다.


나에게 오래 기억에 남는 후원 이야기가 있다.
북녘어린이 영양빵공장을 짓기 위해 후원을 조직하던 때였다. 1구좌는 5천원이었다. 그때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100만원을 후원하는 한 사람을 만나기보다, 5천원을 후원하는 100명을 만나러 간다.”


100만원과 5천원의 크기는 다르다. 하지만 북녘 어린이들에게 왜 빵이 필요한지, 왜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하는지를 100명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 결국 후원이란 돈만이 아니라 100개의 마음을 모으는 일이라는 걸 그때 배웠다.


SNS에 글을 올린 그날 저녁, 한 수사님에게 문자가 왔다.

“그대가 이토록 간절하게 선동을 하고 있는 까닭이 뭘까?”


순간 뜨끔했다. 평소에도 이런 일 좀 그만하라는 말을 듣곤 했던지라 살짝 쪼그라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이런 소중한 오지랖을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잠시 뒤 얼마를 부쳤다는 답장이 왔다.
내가 예상한 금액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 문자를 보고도 믿기지 않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감사하다는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말.

“어떤 선배가 어제 나에게 주고 간 것.
 내가 주인은 아니니까 애 많이 쓰시게.
 그곳이 주인이었구려.
 난 그저 배달했소.
 애초에 내 몫이 아니올시다.”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받은 마음을 자기 몫이라 여기지 않고 필요한 곳으로 다시 흘려보내는 사람. 나는 그날 아주 든든한 응원자, 지지자를 만났다.


그 마음에 힘입어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보았다. 다음 날은 친구의 생일이었다. 이 친구에게는 오래된 ‘원한’이 하나 있다. 아마도 중고등학생 때, 어느 날 ‘브렌따노’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말했다.

“이 제국주의자다!”


무슨 말인지도 몰랐지만 괜히 얼굴이 벌게졌다. 몰래 ‘제국주의자’ 뜻을 찾아보며 혼자 삐졌던 기억이 난다. 5, 6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친구인데, 오랜만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선물로 ‘들’의 정기후원을 안내하며, 선물이니까 꼭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잠시 뒤 답장이 왔다.

“고맙다. 남다른 선물이군.”


나의 완벽한 복수였다. 들을 소개하면서 ‘나에게 이런 친구들이 있어’라는 메시지를 분명 그 친구도 알아들었겠지. 아주 뿌듯한 순간이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세월호 생존자인 주희씨에게 배운 것이다. 생일을 알리고 선물을 자신이 받는 대신, 다른 누군가나 단체를 지정해 후원해 달라고 요청한다는 이벤트이다. 참 좋은 선물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나도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근사하게 복수에 성공했다. 그 친구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내 마음에 남아있는 원한이라면 이렇게 멋지게 풀어야지. 들 덕분이다.


이 모든 마음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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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창립된 후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활동가들이 해 온 인권교육은 단지 교육 내용이나 방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삶으로 교육해 왔다.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해 싸울 때도, 거리에서도, 정부 앞에서도 꾸미지 않은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청소년들 곁에서는 함께 청소년이 되었고, 노동자들 곁에서는 노동자였고, 재난 피해자들 곁에서는 그 피해를 온전히 함께 느꼈다. 약자의 삶에서 일어나는 부당함에 동기화되는 삶을 살아왔다.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오랜만에 툭 던진 후원 요청에도 마음이 찌릿하게 연결되는 것 아닐까. 그 마음을 이어 또다른 선배에게 툭 하고 ‘들’ 후원주점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짧았다.


“응 해야지”


“했다.”


이런 쿨한 배달꾼들이라니.


-글쓴이 | 사슴(김혜은, 들 활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