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이 짓는 교육] 단 5분 동안, ‘인권교육운동’하는 마음 전하기

2026-04-16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이미 한 번 이상 ‘들’의 후원사업 소식을 받아보셨을 것 같습니다. 재정이 어렵지 않은 인권단체는 극히 드물 텐데요. ‘들’ 역시 작년 적자가 4,000만 원에 이를 정도로 큰 재정 위기에 다다랐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점차 축소되던 대면 교육 요청 건수가 그다지 회복되지 않았고, 특히 윤석열 정권을 거치며 인권정책이 전반적으로 퇴행하는 사이 인권교육 역시 크게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대로 라면, 3년 내 단체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회계 감사를 받아 든 순간, 위기를 더욱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각오 또한 새롭게 다질 수 있었는데요. 그럴 수 있었던 건, 2월에 열린 ‘들’ 총회에서 활동회원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큰 믿음과 용기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들의 위기는 들만의 위기가 아니다. 이는 곧 인권교육의 위기이고, 인권교육의 위기는 곧 인권의 위기다.”
“들은 뿌리와 같은 곳이다. 들의 교육으로 인권을 처음 접했던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이 지금은 자기 자리에서 인권 활동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역에 있다 보면, 어느 순간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들과 계속 접점을 만들면서 소통해가는 자리가 자칫 무뎌질 수 있는 감수성을 다시 일깨워준다.”
“들은 나에게 양심이다. 당장은 인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진 못하지만, 들에 걸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양심이 바닥나지 않게 지켜준다.”


‘들’이 여전히 존재해야 할 이유를 각자의 시선과 위치에서 발견해가며 우리는 여전히 ‘들’의 기사회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활동회원과 상임활동가가 서로 합을 맞춰 주변 단체와 지인들에게 후원을 독려하고 끊임없이 말 걸기를 수행한 지난 50일의 여정은 꽤나 고됐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만난 응원의 말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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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여정 속에서 오랜 후원회원인 노조 활동가 한 분의 도움으로 민주노총 활동가분들께 ‘들’을 알릴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짧디짧은 5분 안에 우리 운동의 의미, 나아가 노동운동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먼저, 공공운수노조 분들과의 만남에서는 ‘공공성과 인권’의 연결, 청소년노동인권 의제를 확산시키고자 함께 애써온 긴 시간, 그 모든 투쟁의 역사를 교육 속 ‘이야기’로 전하며 노동운동과 시민을 연결 짓고자 하는 ‘들’의 인권교육에 대한 소개로 발언의 주요 내용을 구성하였습니다.



(…)

화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정의하고, 부조리한 세상이 우리를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때때로 한 목소리를 내게 만듭니다. 재작년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와 서사원 조례를 같이 폐지시킨 날, 공공운수노조와 저희는 연이어 기자회견을 하고 인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들’은 교육단체이기도 하지만, 인권단체로서 여러 네트워크를 꾸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청소년노동인권운동은 저희에게 더욱 각별합니다. ‘날라리들이 용돈이나 벌려고 하는 알바’ 정도로 심각하게 폄훼되던 ‘밑바닥 노동’에 ‘청소년노동’이라 이름 붙이고, 당사자를 조직하며 ‘청소년노동인권’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조직이 저희가 주도적으로 함께 일궜던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였습니다.


부조리한 세상이 우리를 연결시킨다고 말했지만, 더 정확히는 그런 세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물러서고 싶지 않다는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연결시킵니다. ‘공공성과 인권은 폐지할 수 없다!’ 선명한 구호는 언제나 중요하지만, 안타깝게도 구호만으로는 시민들의 마음이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저희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직하기 위해 참여적 인권교육을 합니다. 저희 혼자 많은 말을 하기보다는 참여자가 직접 생각하고, 말하는 시간을 만듭니다. 그러기 위해선 징검다리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에 마음이 이끌리고, 마음을 엽니다. 좋은 이야기란 이 비참한 세계에서 쉽게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함께 어깨 걸고 싸우길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이야기고, 노동자들의 삶과 싸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는 이야기꾼입니다. 차가운 시선을 견디면서 왜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서서 캠페인을 하고, 때로는 파업을 하는지, 그것이 무엇을 지키기 위함이고, 실제로 무엇을 지켜왔는지 퍼트리고 소문냅니다. 좋은 이야기가 흘러야 우리는 고립되지 않습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저희의 교육을 만난 참여자들은 화답하듯 말합니다. 교육 이전과 이후 세상을 보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달라졌다고. 앞으로도 저희는 이러한 인권교육운동을 계속 해내가고 싶습니다. ‘들’은 이야기로 투쟁하며, 이야기로 노동운동을 지키겠습니다. 노동자들이 꿈꾸는 세상과 저희가 바라는 세상은 너무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연이어 한 번 더, 서울지역 노조 활동가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을 함께했던 ‘동지’로서의 시간, 그리고 서로가 ‘자부심’을 잃지 않고 운동할 수 있도록 연대를 주고받고 싶은 마음을 전하려 애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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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원을 호소하는 전화를 한참 돌리다보니) 2011년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를 어떻게든 성사시키기 위해 청소년 활동가들과 함께 일일이 발품을 팔아 서명 가판대를 열고, 주민등록번호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전화를 무수히 돌렸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거리에서 벚꽃 구경은 하지도 못하고, 한 번이라도 우리 쪽으로 눈길을 보내주시는 서울 시민을 향해 “차별과 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에 동참해달라”는 호소를 벚꽃만큼이나 흐드러지게 했었습니다.

조례 발의자로 청소년은 직접 참여할 수 없는 부정의한 현실, 제대로 된 마이크도 앰프도 전화를 돌릴 사무실도 없는 청소년인권운동단체들의 여건은 무척이나 참담했습니다. ‘서울 시민 1%도 동의하지 않는 학생인권’이라는 오명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변 단체들에 연대를 호소할 때, 저희 손을 덜컥 잡아준 곳이 노동조합이었습니다. (…) 청구인 명부 제출 시한이 임박했던 순간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합원들의 서명지가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8만 2천명의 명부를 함께 제출하며 ‘9회말 역전 만루홈럼’의 전설을 만들어냈습니다.

(…) 저는 여유가 생기면 돕겠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이 말이 맞다면, 세상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이토록 버겁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공감할 때, 마음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입니다. 당신의 고통이 나의 고통과도 연결됨을 알고 느낄 때,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와 용기가 생긴다고 저는 믿습니다.

정확히 1년 전, 이곳에서, 노조 사회연대사업 담당자분들을 만나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 그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어 지역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는 연대의 다른 이름이 ‘존엄한 상호의존’일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교육을 하러 왔던 제가 오히려 더 크게 배우고 가는 교육. 그것이 저희가 하는 참여적 인권교육입니다. (…) 저희는 똑같은 교안을 되풀이하는 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무엇을 목표로 교육을 요청하는지에 따라 매번 교육을 새로 만듭니다. 이것이 저희가 교육을 무작정 늘릴 수 없는 이유이고, 그래서 조직의 재정이 많이 어려워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부심 있게 인권교육운동을 할 수 있는 원천입니다.

저희의 운동과 노동운동의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저는 자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개 숙이고 살고 싶지 않다, 서로 적이 돼라 부추기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같이 사는 방법을 찾겠다. 저희가 저희의 자부심을 잃지 않도록, 군림하지 않는 교육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연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들’이 인권교육운동을 하는 마음을 잘 전하고자 발언 내용을 고심했던 시간은, 제게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인권교육은 어떤 의미일지’를 거꾸로 사유해보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5분 분량의 인권교육을 준비하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눌 참여자의 처지와 위치를 고려해, 참여자와 인권이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경로를 설계하는 일이 다름 아닌 교육 기획이기 때문입니다. 절박한 마음이 어떻게, 또 얼마나 가닿았을지 서로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겨를은 없었지만, ‘인권교육활동가’답게 노조 활동가를 만난 이 자리들을 저는 앞으로도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시점에 이 분들과 정식 인권교육으로 꼭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고, 우리가 함께 이야기 나눌수록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더 가깝게 당겨올 수 있을 것이기에!


-글쓴이: 한낱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