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을 준비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인권교육 ‘강사양성’과정에 모인 참여자와 종종 이런 질문을 나누곤 합니다. 다양한 교육기획안이 가득한 두터운 자료집, 교육에 활용할 영상 목록, 깔끔하게 정리된 인권이슈, 철저한 교육과정, 완벽한 프리젠테이션 자료 등도 떠오릅니다. 솔직히 촉박하고 다급할수록 ‘피피티’가 위안이 되지요.(ㅠ) 그런데 이렇게 잘 짜여진 (표준)교안은 전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나’를 위한 것일 뿐, ‘교육 참여자’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권교육이 무엇을 하는 시간인가?’라고 자문할 때, ‘무사히 끝나길 바라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요.

교육 참여자를 우선으로 놓고 본다면, ‘교육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위 이미지에 있는 단어들일 것 같습니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나눠주신 키워드입니다. 청소년의 마음과 삶을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마음과 자세, 참여자의 이야기를 듣는 귀와 노력, 노동인권에 대한 지식과 인권감수성 등이 “준비되어야 할 것”으로 꼽았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자 “왜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 혹은 사건을 떠올려보고,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 만들어 가는 변화를 상상해주십사 요청을 드렸는데요, 각자의 경험 속에서 인권교육이 어떤 영향을 주길 바라는지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통해 20살의 **가 30%만 줄어들기를 바란다.”
‘20살의 나’는 일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그로부터 20년 넘게 흐른 지금이라면 노동자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일은 사라져야 하는데, 여전히 현실은 확 바뀌어 있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계신 것이지요. 그래서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 적어도 그런 부당한 대우의 30%만이라도 줄어들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부당한 대우가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고 싶다는 말보다 현실적이라 살짝 마음 아프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통해서 우리 아들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노동이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아, 자신의 인생을 당당하게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 참여자는 밝게 살아가는 자녀가 어떤 일을 선택해도 응원하는데, 혹시나 그 ‘일’ 때문에 차별받지 않을까, 걱정되는 이 사회를 위해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시작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방향을 좀 간단히 나누어보면 차별받지 않는 일을 택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또 하나는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 아닐까요.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은 후자를 선택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든 차별받지 않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이동하는 데에 인권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일을 시작했을 때, 기관장의 부당한 요구가 있었어요. 그래서 상급 관리자에게 이의신청을 했지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은 퇴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성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도움의 손길을 기다렸지만 보호받지 못했어요. 청소년은 더욱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고, 그들의 편이 되어주고 함께 싸우고 싶습니다.”
일터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대우는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만 발생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나이가 적다는 것는 ‘부당한 대우’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만드는 배경처럼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무시당하고, 함부로 불리고, 돈을 떼이는 것 같은 부당한 대우는 일상에서 싸움이 되거나 범죄가 되는데, 일터에서는 ‘있을 수도 있는 일’이 돼버리는 데에는 나이도 큰 영향을 주니까요. 그래서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 더욱 간절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교육가 스스로 ‘왜 인권교육을 하는가’라고 자문하는 것은 인권교육이 무엇을 하는 시간인지(무엇을 만들어가는지)를 상기하는 과정이 됩니다. ‘왜 인권교육을 하는가’와 인권교육의 목표는 닿아 있으니까요. 닿아 있어야 할 테니까요. ‘인권교육은 나와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갑니다.’라는 평이한 메시지(맞는 말이지만)를 자신의 언어로 찾는 질문인 것이지요. 인권교육을 준비하는 과정에 필요한 것은 다양합니다. 때때로 풍부한 자료, 읽을거리, 영상 등등요. 상황마다 필요한 것이 있고, 없어도 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인권교육을 하는가’의 질문과 스스로의 답은 언제나 준비되어야 할 기본이 됩니다.
- 글쓴이: 은채(상임활동가)
“인권교육을 준비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인권교육 ‘강사양성’과정에 모인 참여자와 종종 이런 질문을 나누곤 합니다. 다양한 교육기획안이 가득한 두터운 자료집, 교육에 활용할 영상 목록, 깔끔하게 정리된 인권이슈, 철저한 교육과정, 완벽한 프리젠테이션 자료 등도 떠오릅니다. 솔직히 촉박하고 다급할수록 ‘피피티’가 위안이 되지요.(ㅠ) 그런데 이렇게 잘 짜여진 (표준)교안은 전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나’를 위한 것일 뿐, ‘교육 참여자’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권교육이 무엇을 하는 시간인가?’라고 자문할 때, ‘무사히 끝나길 바라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요.
교육 참여자를 우선으로 놓고 본다면, ‘교육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위 이미지에 있는 단어들일 것 같습니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나눠주신 키워드입니다. 청소년의 마음과 삶을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마음과 자세, 참여자의 이야기를 듣는 귀와 노력, 노동인권에 대한 지식과 인권감수성 등이 “준비되어야 할 것”으로 꼽았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자 “왜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 혹은 사건을 떠올려보고,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 만들어 가는 변화를 상상해주십사 요청을 드렸는데요, 각자의 경험 속에서 인권교육이 어떤 영향을 주길 바라는지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20살의 나’는 일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그로부터 20년 넘게 흐른 지금이라면 노동자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일은 사라져야 하는데, 여전히 현실은 확 바뀌어 있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계신 것이지요. 그래서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 적어도 그런 부당한 대우의 30%만이라도 줄어들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부당한 대우가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고 싶다는 말보다 현실적이라 살짝 마음 아프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한 참여자는 밝게 살아가는 자녀가 어떤 일을 선택해도 응원하는데, 혹시나 그 ‘일’ 때문에 차별받지 않을까, 걱정되는 이 사회를 위해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시작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방향을 좀 간단히 나누어보면 차별받지 않는 일을 택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또 하나는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 아닐까요.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은 후자를 선택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든 차별받지 않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이동하는 데에 인권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일터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대우는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만 발생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나이가 적다는 것는 ‘부당한 대우’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만드는 배경처럼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무시당하고, 함부로 불리고, 돈을 떼이는 것 같은 부당한 대우는 일상에서 싸움이 되거나 범죄가 되는데, 일터에서는 ‘있을 수도 있는 일’이 돼버리는 데에는 나이도 큰 영향을 주니까요. 그래서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 더욱 간절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교육가 스스로 ‘왜 인권교육을 하는가’라고 자문하는 것은 인권교육이 무엇을 하는 시간인지(무엇을 만들어가는지)를 상기하는 과정이 됩니다. ‘왜 인권교육을 하는가’와 인권교육의 목표는 닿아 있으니까요. 닿아 있어야 할 테니까요. ‘인권교육은 나와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갑니다.’라는 평이한 메시지(맞는 말이지만)를 자신의 언어로 찾는 질문인 것이지요. 인권교육을 준비하는 과정에 필요한 것은 다양합니다. 때때로 풍부한 자료, 읽을거리, 영상 등등요. 상황마다 필요한 것이 있고, 없어도 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인권교육을 하는가’의 질문과 스스로의 답은 언제나 준비되어야 할 기본이 됩니다.
- 글쓴이: 은채(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