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질문 하나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2026-01-30
교육 중간에 머리가 멈춘 저예요.

교육 중간에 머리가 멈춘 저예요.


안녕하세요. 작년에 들 활동을 시작한 유리입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로부터 “들에서 활동하는 건 어때요?”, “교육활동은 재밌어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아왔는데요. 그 질문들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천천히 풀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지난 1년 동안 교육활동을 하면서 마음에 남은 고민을 적어보았습니다. 그 고민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아마 이런 질문으로 시작될 것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교육을 하다가 말을 멈추게 된 적이 있나요? 질문은 분명히 들었고, 대답도 해야 하는데 머릿속에서는 여러 문장이 떠오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는 순간 말입니다. 참여자들의 눈은 나를 향해 있는데, 나만 잠시 멈춰 선 느낌이 들 때. 교육을 하다 보면, 그런 정적의 순간을 종종 마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① 참여자들은 어떻게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낼까요?

대개 말이 멈추는 이유는 참여자의 질문 때문입니다. 엉뚱해서가 아니라,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정확히 짚는 질문들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입니다.

“인권이랑 권리는 뭐가 달라요?”
“권리 말고 다른 말로 대체하면 안 돼요? 다 자기 권리라고만 생각할 것 같아서요.”


이 질문을 받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여러 설명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인권의 역사, 법적인 정의, 일상에서의 표현까지 한꺼번에 펼쳐지지만,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길게 말하면 더 어려워질 것 같고, 가볍게 넘기자니 질문의 무게가 느껴지고. 그렇게 잠시, 입도 머리도 멈춥니다. 돌이켜보면 그 멈춤은, 내가 그동안 내 언어로 충분히 설명해 보지 않았던 내용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른 교육에서는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 ‘이런 것까지는 질문 안 하겠지?’라고 넘겼던 부분들이 참여자의 질문으로 돌아오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속으로 ‘망했다’ 생각하며 ‘참여자들은 어떻게 그 지점을 콕 짚지?’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을 마주하다 보니 어떤 부분을 당연하게 넘겨왔는지, 어디에서 공부를 덜 했는지, 무엇을 내 말로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② 불쑥 나온 참여자의 자기고백은, 어떻게 받으면 좋을까요?

또 한 번의 멈춤은 발달장애인 교육 현장에서였습니다. 당시 저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부 활동에 배제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아파도 삶의 다양한 공간과 참여 기회에서 배제되지 않을 권리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먼저 제가 아팠던 경험을 잠깐 이야기한 뒤, 도입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다치거나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잠깐의 정적 뒤에 한 참여자가 말했습니다. 
“저 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본 적 있어요.” 


그 순간, 마음속에서 ‘헉’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참여자들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질병이나 작은 사고 경험을 말해줄 거라고 짐작하며 구성한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암’이라는 질환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고, 암에 걸린 이후의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가늠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더불어 지금은 완치된 상태이신지, 투병 중이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복잡한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준비해둔 설명은 너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병에 대해 더 물어야 할지, 아니면 예정된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사이, 또다시 입이 멈췄습니다. 교육이 끝난 뒤에도 이 장면은 계속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돌아보면, 교육 현장에서 참여자의 경험이 자기고백의 형태로 건네질 때마다, 늘 비슷한 주저함과 머뭇거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혼자 곱씹다가, 결국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신입 쿠폰’을 발행했습니다. 신입 쿠폰은 신입 활동가가 “이거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해도 되는 공식적인 핑계 같은 것입니다. 신입 활동가는 눈치 보지 않고 질문할 수 있고, 동료 활동가들은 그 질문을 기꺼이 받아줄 기회를 얻게 됩니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교육에서 말이 멈추는 순간은 실패의 장면이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준비했는지를 알려주는 지점이라는 것을요.

그러다 참여자가 꺼내놓은 암 투병 이야기가 처음에 느꼈던 것만큼 크고 무거운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가 늘 심각한 것으로만 다뤄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일지도 모른다는 해석이 더해졌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하나의 해석에만 붙잡혀 있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료들이 해주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아프든 안 아프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핵심 메시지 뒤에, ‘병원비 걱정 안 해도 되는 세상에 대한 상상력’과 같은 세부 목표를 미리 설정해 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목표를 조금 더 구체화해 보니, 권리의 내용도 한층 또렷해졌습니다.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아픈 걸 숨기지 않아도 되는 일터의 분위기’, ‘병가나 조퇴를 말할 때 괜히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 이는 치료의 권리뿐 아니라 삶의 다른 권리들에도 계속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목표가 분명해지자 질문도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치거나 입원해 본 적 있으신가요?”에서 멈추지 않고, “조심스럽지만 여전히 투병 중이신지.”, “투병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가장 걱정됐던 것은 어떤 것이었는지” 와 같은 질문을 덧붙여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내가 준비한 이야기와 예상치 못한 답변, 두 이야기를 이어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장애 당사자들의 이야기나 현장의 경험을 보태며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잘 모르면서 안다고 말하지 않고, 미리 선을 긋지도 않고 

이 외에도 차마 풀지 못한 고민들은 여전히 많고,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그러게요..”, “아, 그러시구나..” 하는 말이 먼저 맴돕니다. 그럼에도 잘 모르면서 안다고 말하지 않고, 못한다고 미리 선을 긋지도 않으려 합니다. 돌아서면 또 자책하게 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혼자 만들어가는 시간으로 남겨두며 외롭게 고립되기보다는 교육에서 만난 참여자들의 질문과 답변, 동료들과의 나눔 속에서 더불어 함께 활동해 보려 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P.S. 고민을 함께 나눠준 상임활동가분들, 특히 한국과 밤낮 시간이 다른 핀란드에 있지만, 온 조직이 신입 활동가를 함께 돌본다는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답변해 준 활동회원분께 감사를 표해요 >,< 


-글쓴이: 유리(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