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이 어느새 1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는 다각적 성찰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한국사회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과정에서 인권교육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짚어보려 합니다. 제가 인권활동을 시작했던 1990년대 중후반만 해도 인권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낯선 시기였어요. 10년쯤 지난 2008년, 한국사회 최초의 인권교육운동단체인 ‘들’이 창립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7년 가까이나 흐른 지금까지도 인권교육운동이 어떤 성격을 지닌 활동인지를 사람들이 잘 모르는구나 싶은 순간이 꽤 있습니다.
#1. 인권 현장을 누비며 이야기를 엮는 시간
올해 ‘들’에서는 지난 12.3 계엄 사태를 돌아보며 ‘인권으로 잇는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다룬 교육을 여러 차례 진행했습니다. 지난 계엄 포고령이 정확하게 빼앗으려 했던 게 바로 인권이었음을 확인하면서 위험에 빠진 민주주의를 잇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짚어보는 교육이었는데요. 이 교육안에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4월까지, 차가운 겨울의 거리에서 보냈던 시간이, 윤석열탄핵비상행동에 참여해 사회대개혁 과제를 뽑아내느라 지새웠던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윤석열 탄핵 광장에서 열린 ‘청소년 열린 발언대’에서
지난달에는 <돌보는 질문, 질문하는 돌봄>을 주제로 온라인 특강을 개최했습니다. ‘돌보는 질문’에선 인권교육에서 참여자의 마음을 돌보는 질문과 대화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를 다루었습니다. ‘질문하는 돌봄’에서는 돌봄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혐오 표현과 돌봄 자체에 대한 혐오 반응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살폈습니다. 교안이 완성되기까지 여러 차례의 분석과 토론, 교안에 대한 상호 점검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돌봄 현장의 혐오표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를 다룬 강의의 경우, 돌봄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전 설문조사, 혐오표현의 시대적 배경에 관한 공부, 현장 교육, 실시된 교육에 대한 사후 평가와 내용 보완 등의 과정을 거쳐 교안을 완성했습니다.
이처럼 ‘들’의 교육안에는 인권 현장에 결합하여 인권을 개척해온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현장을 누빈 발걸음만큼, 형식적이거나 뻔한 인권 이야기가 아니라 생생하고도 고유한 인권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장애인권운동에 결합했던 시간이 장애인권 교육안으로, 청소년인권운동에 함께했던 시간이 청소년인권 교육안으로, 재난 피해자의 곁에 섰던 시간이 재난인권 교육안으로 만들어진 것처럼요. 인권교육이 실시되는 장소 역시 하나의 인권 현장입니다. 교육에서 만난 참여자들과 대화했던 경험을 돌아보고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는 시간들을 거치며 ‘들’의 인권교육론이 만들어집니다. 인권교육은 단지 ‘2~3시간짜리 수업’이 아니라 ‘현장 활동-이야기 엮기-수업-회고’로 이어지는 연속적 과정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마음을 붙잡을 ‘전략’을 짜는 시간
“민주주의자 없이 민주사회가 불가능하듯, 인권을 요구하는 시민 없이는 인권사회도 불가능하다.” 얼마 전 인권교육을 준비하면서 만든 문장입니다. 그렇다면 인권을 지지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는 것일까요? 차별과 불평등이 당연한 세상에서, 인간다운 삶과 안전마저 돈과 권력에 좌우되는 상품이자 특권인 세상에서, 인권 이야기는 낯선 외계어나 터무니없는 얘기처럼 들리기 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을 통해 사람의 의식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입니다.
얼마 전, 한 지자체에서 통・반장과 주민자치위원들을 모은 재난인권교육을 준비하면서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실상 의무교육이나 다름없는 조건에서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고, 재난에 관한 세간의 통념도 굳건하니까요. 노트북 켜놓고 일하는 사람, 교육 시간이 길다고 불만 섞인 표정을 짓는 사람도 간혹 있었지만, 다행히도 5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참여자 대부분이 재난에 대한 인권 기반 접근의 중요성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이날 재미난 후기를 만났습니다. “재난은 불가항력과 천재지변이지만 협동과 관심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행복합니다.”라고 적힌 후기를 보는 순간 ‘아이쿠!’ 했습니다. 재난은 불가항력의 일이나 천재지변으로만 봐서는 안 되며 ‘어쩌지 않아서 생긴 사회적 사건’이라는 게 교육의 핵심 메시지였거든요. 그렇지만 전체 내용을 보자니 약간의 ‘굴절’은 있었어도 메시지가 완전히 ‘오전송’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이는 “교육 내용은 좋은데” 딴짓하거나 투덜대는 참여자를 안타까워하는 메모를 함께 적어주셨습니다. 이 정도 반응이면 꽤 성공한 교육이 아닌가 했습니다.
교육만으론 세상이 바뀌지 않지만, 교육 없이 세상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모든 운동이 저항을 조직하는 한편,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의식의 변화를 꾀하는 까닭입니다. 인권에 감응하는 역량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권의 매력에 이끌리도록 만드는 일조차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지금처럼 인권에 대한 백래시가 심해진 시대에서, 특히나 의무교육으로 인권교육에 불려 나온 이들의 마음을 붙잡으려면 다양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인권교육을 준비하는 과정은 단순히 PPT를 매만지는 시간이 아니라, 참여자에게 먹힐 이야기와 전략까지 함께 짜야 하는 시간입니다.
#3. 가난을 감내하고 관점을 벼리는 시간
‘들’은 다른 인권단체와는 달리 교육 수입이 있어서 재정적인 어려움은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상임활동가들이 교육비를 전액 ‘들’로 후원하고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들’의 재정은 지금껏 유지되어왔습니다. 교육 횟수를 높이면 그만큼 후원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상임활동가들은 수익으로 연결되는 교육활동뿐 아니라, 돈이 되지 않는 연대체 활동, 회원들과 함께하는 팀 활동, 인권활동도 병행합니다. 교육을 많이 나가려면 인권활동을 줄여야 하고 관점을 벼리며 교육을 준비하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결국 현장성 있는, 현재적 쟁점을 회피하지 않는 인권교육이 유지되기 어려워집니다. ‘들’이 추구하는 인권교육을 일구어내려면, 수입을 어느 정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셈입니다.

세월호참사 11주기를 맞아 진앵한 ‘재난, 인간의 존엄을 묻는 시간’ 캠페인 활동
게다가 지금은 대면 인권교육의 수요가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지자체 인권조례, 장애인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권의 제도화가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는 덩달아 인권교육 수요도 많았습니다. 그 덕분에 ‘들’에서 활동하는 상임활동가 수도 늘었고, 최저임금이지만 활동비 지급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경우 이른바 ‘내부 인권강사’라는 이름으로 소속 구성원이 인권교육을 맡는 방식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인권에 적대적인 정치환경의 변화 등을 거치면서 인권교육이 대폭 축소되거나 형식적인 동영상 강의로 대체되고 있기도 합니다. 내실 있고 진보적인 관점을 지닌 인권교육의 축소는 인권사회로 나아가는 기본 토대의 잠식으로, 시민과 인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기회의 축소로 이어집니다. 이런 변화들에 대응하고 조직 운영의 무게를 짊어지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도 활동가의 시간에 포함됩니다.
“인권교육, 거기서 거기 아닌가?”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닐 텐데, 교육 준비에 뭐 그리 오래 걸려?” 이런 질문을 듣게 되면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교안은 없다고. 정보나 지식만 전달하는 교육으로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현장의 요구와 현재적 쟁점을 고려하여 교안을 끊임없이 경신하지 않으면 그 교육은 실패하기 쉽다고. 인권교육의 축소는 결국 인권의 지지 기반의 축소로 이어진다고. 그렇게 되면 인권사회로 가는 발걸음이 더 늦어지는 셈이라고 말입니다.
– 글: 개굴(배경내, 상임활동가)
12.3 계엄이 어느새 1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는 다각적 성찰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한국사회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과정에서 인권교육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짚어보려 합니다. 제가 인권활동을 시작했던 1990년대 중후반만 해도 인권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낯선 시기였어요. 10년쯤 지난 2008년, 한국사회 최초의 인권교육운동단체인 ‘들’이 창립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7년 가까이나 흐른 지금까지도 인권교육운동이 어떤 성격을 지닌 활동인지를 사람들이 잘 모르는구나 싶은 순간이 꽤 있습니다.
#1. 인권 현장을 누비며 이야기를 엮는 시간
올해 ‘들’에서는 지난 12.3 계엄 사태를 돌아보며 ‘인권으로 잇는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다룬 교육을 여러 차례 진행했습니다. 지난 계엄 포고령이 정확하게 빼앗으려 했던 게 바로 인권이었음을 확인하면서 위험에 빠진 민주주의를 잇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짚어보는 교육이었는데요. 이 교육안에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4월까지, 차가운 겨울의 거리에서 보냈던 시간이, 윤석열탄핵비상행동에 참여해 사회대개혁 과제를 뽑아내느라 지새웠던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윤석열 탄핵 광장에서 열린 ‘청소년 열린 발언대’에서
지난달에는 <돌보는 질문, 질문하는 돌봄>을 주제로 온라인 특강을 개최했습니다. ‘돌보는 질문’에선 인권교육에서 참여자의 마음을 돌보는 질문과 대화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를 다루었습니다. ‘질문하는 돌봄’에서는 돌봄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혐오 표현과 돌봄 자체에 대한 혐오 반응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살폈습니다. 교안이 완성되기까지 여러 차례의 분석과 토론, 교안에 대한 상호 점검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돌봄 현장의 혐오표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를 다룬 강의의 경우, 돌봄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전 설문조사, 혐오표현의 시대적 배경에 관한 공부, 현장 교육, 실시된 교육에 대한 사후 평가와 내용 보완 등의 과정을 거쳐 교안을 완성했습니다.
이처럼 ‘들’의 교육안에는 인권 현장에 결합하여 인권을 개척해온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현장을 누빈 발걸음만큼, 형식적이거나 뻔한 인권 이야기가 아니라 생생하고도 고유한 인권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장애인권운동에 결합했던 시간이 장애인권 교육안으로, 청소년인권운동에 함께했던 시간이 청소년인권 교육안으로, 재난 피해자의 곁에 섰던 시간이 재난인권 교육안으로 만들어진 것처럼요. 인권교육이 실시되는 장소 역시 하나의 인권 현장입니다. 교육에서 만난 참여자들과 대화했던 경험을 돌아보고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는 시간들을 거치며 ‘들’의 인권교육론이 만들어집니다. 인권교육은 단지 ‘2~3시간짜리 수업’이 아니라 ‘현장 활동-이야기 엮기-수업-회고’로 이어지는 연속적 과정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마음을 붙잡을 ‘전략’을 짜는 시간
“민주주의자 없이 민주사회가 불가능하듯, 인권을 요구하는 시민 없이는 인권사회도 불가능하다.” 얼마 전 인권교육을 준비하면서 만든 문장입니다. 그렇다면 인권을 지지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는 것일까요? 차별과 불평등이 당연한 세상에서, 인간다운 삶과 안전마저 돈과 권력에 좌우되는 상품이자 특권인 세상에서, 인권 이야기는 낯선 외계어나 터무니없는 얘기처럼 들리기 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을 통해 사람의 의식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입니다.
얼마 전, 한 지자체에서 통・반장과 주민자치위원들을 모은 재난인권교육을 준비하면서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실상 의무교육이나 다름없는 조건에서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고, 재난에 관한 세간의 통념도 굳건하니까요. 노트북 켜놓고 일하는 사람, 교육 시간이 길다고 불만 섞인 표정을 짓는 사람도 간혹 있었지만, 다행히도 5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참여자 대부분이 재난에 대한 인권 기반 접근의 중요성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재난인권교육에 참여했던 참여자 후기
이날 재미난 후기를 만났습니다. “재난은 불가항력과 천재지변이지만 협동과 관심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행복합니다.”라고 적힌 후기를 보는 순간 ‘아이쿠!’ 했습니다. 재난은 불가항력의 일이나 천재지변으로만 봐서는 안 되며 ‘어쩌지 않아서 생긴 사회적 사건’이라는 게 교육의 핵심 메시지였거든요. 그렇지만 전체 내용을 보자니 약간의 ‘굴절’은 있었어도 메시지가 완전히 ‘오전송’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이는 “교육 내용은 좋은데” 딴짓하거나 투덜대는 참여자를 안타까워하는 메모를 함께 적어주셨습니다. 이 정도 반응이면 꽤 성공한 교육이 아닌가 했습니다.
교육만으론 세상이 바뀌지 않지만, 교육 없이 세상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모든 운동이 저항을 조직하는 한편,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의식의 변화를 꾀하는 까닭입니다. 인권에 감응하는 역량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권의 매력에 이끌리도록 만드는 일조차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지금처럼 인권에 대한 백래시가 심해진 시대에서, 특히나 의무교육으로 인권교육에 불려 나온 이들의 마음을 붙잡으려면 다양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인권교육을 준비하는 과정은 단순히 PPT를 매만지는 시간이 아니라, 참여자에게 먹힐 이야기와 전략까지 함께 짜야 하는 시간입니다.
#3. 가난을 감내하고 관점을 벼리는 시간
‘들’은 다른 인권단체와는 달리 교육 수입이 있어서 재정적인 어려움은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상임활동가들이 교육비를 전액 ‘들’로 후원하고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들’의 재정은 지금껏 유지되어왔습니다. 교육 횟수를 높이면 그만큼 후원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상임활동가들은 수익으로 연결되는 교육활동뿐 아니라, 돈이 되지 않는 연대체 활동, 회원들과 함께하는 팀 활동, 인권활동도 병행합니다. 교육을 많이 나가려면 인권활동을 줄여야 하고 관점을 벼리며 교육을 준비하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결국 현장성 있는, 현재적 쟁점을 회피하지 않는 인권교육이 유지되기 어려워집니다. ‘들’이 추구하는 인권교육을 일구어내려면, 수입을 어느 정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셈입니다.
세월호참사 11주기를 맞아 진앵한 ‘재난, 인간의 존엄을 묻는 시간’ 캠페인 활동
게다가 지금은 대면 인권교육의 수요가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지자체 인권조례, 장애인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권의 제도화가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는 덩달아 인권교육 수요도 많았습니다. 그 덕분에 ‘들’에서 활동하는 상임활동가 수도 늘었고, 최저임금이지만 활동비 지급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경우 이른바 ‘내부 인권강사’라는 이름으로 소속 구성원이 인권교육을 맡는 방식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인권에 적대적인 정치환경의 변화 등을 거치면서 인권교육이 대폭 축소되거나 형식적인 동영상 강의로 대체되고 있기도 합니다. 내실 있고 진보적인 관점을 지닌 인권교육의 축소는 인권사회로 나아가는 기본 토대의 잠식으로, 시민과 인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기회의 축소로 이어집니다. 이런 변화들에 대응하고 조직 운영의 무게를 짊어지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도 활동가의 시간에 포함됩니다.
“인권교육, 거기서 거기 아닌가?”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닐 텐데, 교육 준비에 뭐 그리 오래 걸려?” 이런 질문을 듣게 되면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교안은 없다고. 정보나 지식만 전달하는 교육으로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현장의 요구와 현재적 쟁점을 고려하여 교안을 끊임없이 경신하지 않으면 그 교육은 실패하기 쉽다고. 인권교육의 축소는 결국 인권의 지지 기반의 축소로 이어진다고. 그렇게 되면 인권사회로 가는 발걸음이 더 늦어지는 셈이라고 말입니다.
– 글: 개굴(배경내,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