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켜켜이 쌓인 마음을 읽는 공공기관 인권교육
인권적 조직문화와 직장 내 괴롭힘을 다루는 교육에서 만난 이야기
최근여러공공기관을다니며종사자분들을만나직장내괴롭힘과인권적조직문화를다루는교육을진행했는데요. 교육 중반에 “나에게 일터는 ____하다.”라는 문장을 채워보는 활동을 진행했어요. 직접 물어보면 동료들이 있는 자리에서 솔직한 마음을 꺼내놓기 어려울 수 있고, 포스트잇을 받자니정리하는데시간이오래걸려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멘티미터의 워드클라우드(여럿이 각자 단어를 입력하면 같은 단어가 적힌 개수에 따라 글씨의 크기가 변화하는 방식)기능을 시도했어요. QR 코드를통해나온입력창에감정을입력하고함께결과를살펴보았습니다.


그렇게여러기관에서교육을진행하다가놀라운점을하나발견했습니다. 서로다른기관인데도참여자들이반복적으로, 꾸준히입력하는단어가있었어요. 바로 ‘징글징글하다’였습니다. 처음에는 ‘애증의 마음이구나.’하고 단순하게생각했지만, 교육이거듭될수록이단어가계속등장하니궁금해지기시작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지금까지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물어놓고는, 나온 이야기를 충분히 다루지 않고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육의 회차가 쌓일수록 뒤에서 다루고자 했던 내용을 줄이더라도 이 이야기에 더 집중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서로다른환경에서일하는데도많은사람들이같은감정을말하고있다는사실은, 이단어가 한국사회의일터에흐르는일종의 ‘공기’처럼퍼져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이 징글징글함이란 무엇일까요? 긍정적인마음은아닌게분명한데, 그렇다고아주부정적인감정만도아닌복잡한결이묻어있었습니다. 지긋지긋함, 포기와체념, 익숙함, 그리고그속에섞여있는작은애정까지켜켜이쌓여있는말처럼느껴졌어요.
다행히 후반부에 갔던 기관에서 아주 적극적인 참여자 분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래서우리는 ‘징글징글함’의속살을 일터의 구체적 장면과 함께깊숙히들여다볼수있었습니다.지긋지긋하고, 징글징글하지만 끝내 떠나지 못하는 마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참여자들에게 묻자 다양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칠판에는 ‘재미없다’, ‘지루하다’, ‘꼴보기싫다’, ‘한결같다’, ‘지친다’, ‘애증’, ‘화난다’, ‘힘들다’, ‘지겹다.’같은단어들이빼곡하게적혀갔습니다. 비슷해보이지만, 참여자들의설명을듣다보면하나하나가각각다른이야기를품고있었습니다. 단어들을하나씩짚으며질문을던졌습니다. “사람은언제일터에서이런마음이들까요?” 이 질문을 길잡이삼아 우리 안에 켜켜이 쌓인 마음을 꺼내놓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닮고도 다른 마음

‘재미없다’, ‘지루하다’는일에대한감정이었습니다. 일이단조롭고변화가없을때, 의견을내기어렵거나의견이받아들여지지않을때, 일에서성장하거나배운다는느낌을잃었을때, 일하는 시간은 재미없고 지루한 마음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단순한피로나불만이아니라, 일하는 사람과 일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이죠. 출근은 하지만 ‘기대’를 잃어버린 일터, 설렘이 사라진 일터가 어떤 모습인지, 다른 감정들을 톺아보며 그 답을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반면 ‘꼴보기싫다’는감정은사람혹은관계에대한감각에 가까웠습니다. 예를들어, 회의시간에나는같은문제를반복해서이야기하지만좀처럼공론화되지않을 때, 사람들은속으로 생각합니다. ‘아, 진짜 징글징글하다.’참여자들은이징글징글함속에는 ‘꼴보기싫다’는마음이함께들어있다고했습니다. 조직에서 나의 어려움이받아들여지지않고, 공감받지 못한채 (주로 상사에 의해) 묻힐 때 일터는 괴로운 공간이 됩니다. 하지만 일터를 떠나지 않는 한, 그렇다고관계를끊어낼수도없는 노릇이죠. 결국 일하는 사람의 마음은 ‘꼴보기싫다’라는감정으로번지게 됩니다. 이말은단순히특정 인물 자체를싫어한다기보다, 해결되지못한관계와구조에대한좌절이쌓여만들어진감정이지요. 참여자들이 “진짜꼴보기싫은데, 그래도아직 그만둘생각은없어요.” 라고 말할 때, 그쓴 웃음에는 체념과 그래도 일터를 지키고 싶은 일말의 의지가동시에묻어났습니다.
그리고 ‘지친다’, ‘힘들다’, ‘무기력하다’라는단어들은번아웃과깊이연결되어있었습니다. 일터로 가는 인권교육을 갈 때 들은 종종 “___만 없어도 일할 맛 날 것 같다.”라는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공통적으로 돌아오는 말들이 있습니다.
“아무리해도 일이 끝나지않는느낌이들어요.”
“저는현장에서사람만나는일을하고싶은데, 정작일지작성하는데대부분의시간을쓰고있어요.”
“자주 바뀌거나 그냥 내리꽂는 업무지시에 힘이 빠져요.”
이런이야기들은말들은단순히피곤하다는뜻을넘어, 일의본질과동기가흐릿해지는순간을드러냅니다. 실무자의현실을고려하지않은업무량과업무방식, 수직적인구조는사람을쉽게고갈시키곤합니다. 감정들을하나씩꺼내어말하다보니, 참여자들은자기자신의마음뿐아니라동료들의마음도새롭게바라보는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참여자들사이에서도서로에대한이해가조금씩생기는것을느낄수있었어요. ‘나만그런게아니었구나’라는안도감과 ‘동료들은 이런감정속에있었구나’라는발견이자연스럽게만들어졌습니다. 이럴 때가그동안 익숙해진 조직문화나 일터를 낯설게 볼 힘이 생기는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일터를 읽는 인권교육

많은분들이인권교육에서조직문화를다룬다고하면법이나제도, 규정부터떠올립니다. 교육가들 또한 종종직장내괴롭힘의법적정의나구조적요소부터접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그것도필요하지만, 그보다먼저살펴야하는것은노동자들이일터에서어떤감각으로하루를견디고있는지가 아닐까요?인권은결국사람이하루를어떻게살아냈는가를묻는것이고, 그하루를설명하는 여러 언어 중 하나가 바로감정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익숙해진감정을잘알아차리지못합니다. “원래다그런거야.”, “여기서는다이렇게일해”와 같은말들은사실불편함을감추기위해만들어진관성에가깝습니다. 감정읽기는그익숙함을잠시멈추고, 다시낯설게바라보게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일터의공기를처음으로자각하게 됩니다. 무기력과지루함이왜반복되는지, 애증과징글징글함이왜동료들사이에흐르는지, 그것이개인의성향이아니라구조와문화의문제임을자연스럽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날교육을마치고돌아오는길에서 저는 직장내괴롭힘이나조직문화의문제를단순히 ‘사건’이나 ‘법’의언어로는 충분히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다시금떠올렸습니다. ‘징글징글하다.’는말하나에 이토록 많은이야기가 담겨 있었던 것처럼, 일터라는 공간에는 지루한하루, 반복되는패턴, 지친마음, 버티고있는책임감, 기대없음, 그럼에도 이 곳을 붙잡고 버티려는사람들의의지까지겹겹이쌓여있습니다.
일터로 찾아가는 인권교육이 ‘이미 존재하지만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될 때, 교육은 비로소 그 일터의 속살과 만나게 됩니다. 직장 내 인권교육이 해야 하는 역할도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오늘을 묻고, 그 마음에 깃든 감정을 함께 해석해낼 수 있을 때, 견고해보이던 조직문화도 조금씩 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권교육이 만든 작은 발견들이 쌓여 일터의 공기를 바꾸고, 사람들의 하루를 서서히 다르게 만들기를 바랍니다.
*작성: 연잎(상임활동가)
[인권교육, 살짝쿵] 켜켜이 쌓인 마음을 읽는 공공기관 인권교육
인권적 조직문화와 직장 내 괴롭힘을 다루는 교육에서 만난 이야기
최근여러공공기관을다니며종사자분들을만나직장내괴롭힘과인권적조직문화를다루는교육을진행했는데요. 교육 중반에 “나에게 일터는 ____하다.”라는 문장을 채워보는 활동을 진행했어요. 직접 물어보면 동료들이 있는 자리에서 솔직한 마음을 꺼내놓기 어려울 수 있고, 포스트잇을 받자니정리하는데시간이오래걸려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멘티미터의 워드클라우드(여럿이 각자 단어를 입력하면 같은 단어가 적힌 개수에 따라 글씨의 크기가 변화하는 방식)기능을 시도했어요. QR 코드를통해나온입력창에감정을입력하고함께결과를살펴보았습니다.
그렇게여러기관에서교육을진행하다가놀라운점을하나발견했습니다. 서로다른기관인데도참여자들이반복적으로, 꾸준히입력하는단어가있었어요. 바로 ‘징글징글하다’였습니다. 처음에는 ‘애증의 마음이구나.’하고 단순하게생각했지만, 교육이거듭될수록이단어가계속등장하니궁금해지기시작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지금까지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물어놓고는, 나온 이야기를 충분히 다루지 않고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육의 회차가 쌓일수록 뒤에서 다루고자 했던 내용을 줄이더라도 이 이야기에 더 집중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서로다른환경에서일하는데도많은사람들이같은감정을말하고있다는사실은, 이단어가 한국사회의일터에흐르는일종의 ‘공기’처럼퍼져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이 징글징글함이란 무엇일까요? 긍정적인마음은아닌게분명한데, 그렇다고아주부정적인감정만도아닌복잡한결이묻어있었습니다. 지긋지긋함, 포기와체념, 익숙함, 그리고그속에섞여있는작은애정까지켜켜이쌓여있는말처럼느껴졌어요.
다행히 후반부에 갔던 기관에서 아주 적극적인 참여자 분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래서우리는 ‘징글징글함’의속살을 일터의 구체적 장면과 함께깊숙히들여다볼수있었습니다.지긋지긋하고, 징글징글하지만 끝내 떠나지 못하는 마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참여자들에게 묻자 다양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칠판에는 ‘재미없다’, ‘지루하다’, ‘꼴보기싫다’, ‘한결같다’, ‘지친다’, ‘애증’, ‘화난다’, ‘힘들다’, ‘지겹다.’같은단어들이빼곡하게적혀갔습니다. 비슷해보이지만, 참여자들의설명을듣다보면하나하나가각각다른이야기를품고있었습니다. 단어들을하나씩짚으며질문을던졌습니다. “사람은언제일터에서이런마음이들까요?” 이 질문을 길잡이삼아 우리 안에 켜켜이 쌓인 마음을 꺼내놓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닮고도 다른 마음

‘재미없다’, ‘지루하다’는일에대한감정이었습니다. 일이단조롭고변화가없을때, 의견을내기어렵거나의견이받아들여지지않을때, 일에서성장하거나배운다는느낌을잃었을때, 일하는 시간은 재미없고 지루한 마음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단순한피로나불만이아니라, 일하는 사람과 일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이죠. 출근은 하지만 ‘기대’를 잃어버린 일터, 설렘이 사라진 일터가 어떤 모습인지, 다른 감정들을 톺아보며 그 답을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반면 ‘꼴보기싫다’는감정은사람혹은관계에대한감각에 가까웠습니다. 예를들어, 회의시간에나는같은문제를반복해서이야기하지만좀처럼공론화되지않을 때, 사람들은속으로 생각합니다. ‘아, 진짜 징글징글하다.’참여자들은이징글징글함속에는 ‘꼴보기싫다’는마음이함께들어있다고했습니다. 조직에서 나의 어려움이받아들여지지않고, 공감받지 못한채 (주로 상사에 의해) 묻힐 때 일터는 괴로운 공간이 됩니다. 하지만 일터를 떠나지 않는 한, 그렇다고관계를끊어낼수도없는 노릇이죠. 결국 일하는 사람의 마음은 ‘꼴보기싫다’라는감정으로번지게 됩니다. 이말은단순히특정 인물 자체를싫어한다기보다, 해결되지못한관계와구조에대한좌절이쌓여만들어진감정이지요. 참여자들이 “진짜꼴보기싫은데, 그래도아직 그만둘생각은없어요.” 라고 말할 때, 그쓴 웃음에는 체념과 그래도 일터를 지키고 싶은 일말의 의지가동시에묻어났습니다.
그리고 ‘지친다’, ‘힘들다’, ‘무기력하다’라는단어들은번아웃과깊이연결되어있었습니다. 일터로 가는 인권교육을 갈 때 들은 종종 “___만 없어도 일할 맛 날 것 같다.”라는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공통적으로 돌아오는 말들이 있습니다.
이런이야기들은말들은단순히피곤하다는뜻을넘어, 일의본질과동기가흐릿해지는순간을드러냅니다. 실무자의현실을고려하지않은업무량과업무방식, 수직적인구조는사람을쉽게고갈시키곤합니다. 감정들을하나씩꺼내어말하다보니, 참여자들은자기자신의마음뿐아니라동료들의마음도새롭게바라보는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참여자들사이에서도서로에대한이해가조금씩생기는것을느낄수있었어요. ‘나만그런게아니었구나’라는안도감과 ‘동료들은 이런감정속에있었구나’라는발견이자연스럽게만들어졌습니다. 이럴 때가그동안 익숙해진 조직문화나 일터를 낯설게 볼 힘이 생기는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일터를 읽는 인권교육
많은분들이인권교육에서조직문화를다룬다고하면법이나제도, 규정부터떠올립니다. 교육가들 또한 종종직장내괴롭힘의법적정의나구조적요소부터접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그것도필요하지만, 그보다먼저살펴야하는것은노동자들이일터에서어떤감각으로하루를견디고있는지가 아닐까요?인권은결국사람이하루를어떻게살아냈는가를묻는것이고, 그하루를설명하는 여러 언어 중 하나가 바로감정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익숙해진감정을잘알아차리지못합니다. “원래다그런거야.”, “여기서는다이렇게일해”와 같은말들은사실불편함을감추기위해만들어진관성에가깝습니다. 감정읽기는그익숙함을잠시멈추고, 다시낯설게바라보게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일터의공기를처음으로자각하게 됩니다. 무기력과지루함이왜반복되는지, 애증과징글징글함이왜동료들사이에흐르는지, 그것이개인의성향이아니라구조와문화의문제임을자연스럽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날교육을마치고돌아오는길에서 저는 직장내괴롭힘이나조직문화의문제를단순히 ‘사건’이나 ‘법’의언어로는 충분히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다시금떠올렸습니다. ‘징글징글하다.’는말하나에 이토록 많은이야기가 담겨 있었던 것처럼, 일터라는 공간에는 지루한하루, 반복되는패턴, 지친마음, 버티고있는책임감, 기대없음, 그럼에도 이 곳을 붙잡고 버티려는사람들의의지까지겹겹이쌓여있습니다.
일터로 찾아가는 인권교육이 ‘이미 존재하지만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될 때, 교육은 비로소 그 일터의 속살과 만나게 됩니다. 직장 내 인권교육이 해야 하는 역할도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오늘을 묻고, 그 마음에 깃든 감정을 함께 해석해낼 수 있을 때, 견고해보이던 조직문화도 조금씩 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권교육이 만든 작은 발견들이 쌓여 일터의 공기를 바꾸고, 사람들의 하루를 서서히 다르게 만들기를 바랍니다.
*작성: 연잎(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