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이 짓는 교육] 사회복지사 인권이 높아지면 장애인에겐 무슨 일이? — 사회복지사와 장애인의 존엄을 묶어 세우면 보이는 이야기

2026-05-17


사회복지사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인권교육은 그들의 책무 중심으로 짜이기 쉽습니다. 그들이 지원하는 이들의 인권과 사회복지사의 존중 의무만 강조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반론이 제기됩니다. “우리 인권은 왜 말하지 않냐?” “이용인의 권리와 복지사의 권리 중 무엇이 우선이냐?” 그래서 ‘사회복지사의 권리’를 주제로 한 교육이 추가로 배치되는데, 이 교육에서도 “이용인의 권리도 중요하고, 사회복지사의 권리도 중요하다”는 메시지만 전해지곤 합니다.


질문을 바꾸면 응답이 바뀐다


사회복지사의 인권과 이용인의 인권을 병행적 혹은 대립적으로 그리지 않고 통합적으로 다룰 수는 없을까.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장애인의 인권 수준이 높아져야 그들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사의 인권 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해 왔는데, 문장의 순서를 바꿔보면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까. 사회복지사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높이려면 그들의 노동이 어떤 공적 의미를 지니는지도 더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 끝에 장애인권을 주제로 만난 사회복지사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사회복지사의 인권 수준이 높아지면 장애인(이용인)의 [     ]도 좋아질 것이다.”


그랬더니 ‘삶의 질, 행복 수준, 관계성, 돌봄 수준’과 같은 다소 추상적이면서도 예상 가능한 답변이 주로 나왔습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의미가 모호해 새로운 인식을 여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질문을 좀 더 뾰족하게 다듬어 다음번엔 이렇게 질문해보았습니다.


“사회복지사의 인권 수준이 높아지면 장애인(이용인)의 [     ]할 권리도 좋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2fa5d4e3f7fb5.png두루뭉술했던 질문을 좀 더 뾰족한 질문으로 바꾸어보았다


질문이 바귀니 응답도 훨씬 더 다채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복지사의 인권 수준이 높아지면 장애인에겐 무슨 일이?


“장애인의 선택할 권리도 좋아질 것이다. 사회복지사가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기다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감정적, 심리적 안정감이 높아질 것이다. 사회복지사가 안정적인 노동 조건에서 일하면 스트레스도 줄고 심리적 여유도 있어 이용인과 더 많이 소통하고 지지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존중받으며 살아갈 권리도 좋아질 것이다. 존중을 경험한 사회복지사가 장애인을 존중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참여할 권리도 좋아질 것이다.  장애인의 의견을 확인할 시간도 많아지고, 장애인 참여 기구들도 내실있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인권 전반이 좋아질 것이다. 사회복지사의 인권 수준이 높아진다는 건 그들의 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고, 그만큼 장애인을 어떻게 존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커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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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들이 찾아준 문장들


구구절절 동의가 되는 답변들 속에 유독 눈길을 끄는 응답이 있었습니다.


“장애인의 요구할 권리가 좋아질 것이다.”


장애인이 서비스의 ‘대상’으로만 해석되지 않고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요구할 수 있는 ‘주체’로 등장하는 문장이었기에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장애인은 대개 ‘한정된 예산에서 주는 대로 받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처지’에 놓이거나, ‘전문가인 사회복지사가 판단한 필요(needs)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받는 수동적 존재‘로 취급되곤 하니까요. 참여자들은 ’사회복지사에게 육체적, 심리적 여유가 있어야 장애인의 요구를 반길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끄덕끄덕. 맞는 말이지만 그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복지사와 장애인의 인권을 둘의 관계 안에서만 바라보아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렇게 의견을 보태보았습니다.


”장애인이 요구를 가진 존재가 된다는 건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장애인에게 이토록 차별적인 사회에서도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자 한다는 증거이니까요. 여러분이 만나는 장애인이 꺼내놓은 요구를 예산이나 제도를 핑계로 묵살하지 않고 존중하려면 사회복지사 개인의 태도 변화만으로 역부족인 경우가 많을 겁니다. 사회복지사에게도 자신이 만나는 장애인의 요구를 법인과 시, 국가를 상대로 적극 옹호할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의 존엄을 옹호할 권리가 있어야 사회복지사의 노동도 존엄해지고, 장애인의 요구할 권리도 보장되는 게 아닐까요?“


상관관계에서 인과관계로 발전하려면


사회복지사의 인권 수준이 높아지면 그들의 곁에서 서비스 지원을 받는 장애인의 인권 수준도 높아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회복지사들의 노동조건이 좋아진다는 것은 단 10분이라도 자신이 지원하는 이들의 상황을 더 관심 있게 살펴볼 육체적, 정신적 여유가 생긴다는 의미일 테고, 그만큼 더 질 높은 돌봄과 더 다채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도 커지는 셈이니까요. 장애인의 인권이 소외되고 존중되지 못하는 사회라면 그들의 곁에서 노동을 수행하는 사회복지사의 존재도 소외되고 존중되는 사회일 겁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의 노동 조건이 향상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장애인의 인권이 더 잘 보장되는 건 아닐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사의 임금이 인상되고 인력이 보충되고 활용 가능한 예산이 늘어나는 조건은 장애인의 인권 향상에서 필요조건일 수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사회복지의 의미와 장애인의 인권을 질문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사회복지사업법 제1조는 ”사회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 대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사회복지의 목적으로 규정합니다. 사회복지가 단편적인 서비스의 제공과 동일어가 아니라 이용인의 존엄과 인권을 옹호하는 일임을 상기한다면, 사회복지사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 가운데 하나는 ’사회복지다운 노동을 할 권리‘, 곧 이용인의 인권을 옹호할 권리가 아닐까요? 노동자로서 사회복지사가 평등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노동 조건의 개선이 이용인의 인권을 옹호하는 결과로 이어지려면 이용인의 존엄에 관한 질문도 더 깊게 펼쳐야 합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10년을 일했던 한 사회복지사는 근무하는 동안 많은 거주인이 돌아가셨는데도 단 한 번의 장례도 치른 적 없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24시간 냉동고에 있다가 이름도, 애도도, 기억도 없이 사라지는 목숨 앞에서 그는 애도할 권리조차 없는 자기 노동의 무참함도 함께 느낍니다. 한정된 예산과 제공자의 틀에 사람을 끼어 넣지 않고, 이용인의 존엄을 위해 사회복지가 유동적으로 움직일 때 의미 있는 노동을 수행할 사회복지자의 권리도 보장되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글쓴이: 개굴(배경내,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