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이 짓는 교육] 말문이 막히는 말, 헬프 미!

2026-07-26

참여자의 질문이나 인권교육 중에 발생하는 뜻밖의 상황을 대처하는 ‘나름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와장창 착각이 깨지기도 합니다. 바로 최근인데요. 그야말로 ‘나름’만 대처했구나 싶습니다. 엄청 심각한 질문이나 ‘큰일’이 벌어진 상황은 아닌데, 말문이 ‘딱’ 막혔던 순간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건네주세요!

 

# 장면 1 ‘상관없는데요’

 

참여자와 밸런스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같이 살 수는 없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 맞춰 먹으려 만든 음식 말도 없이 먹어 치우는 사람 vs
벗은 양발, 옷, 사용한 수건을 집안 곳곳에 흘리고 치우지 않는 사람


한 참여자가 ‘상관없는데요’라고 답했습니다. 딱 3명만 참여하는 교육이었던지라 좀 더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있었는데요, 답은 여전히 ‘상관없다’였습니다. 이어진 다른 질문에도 같은 방식의 대답을 들은 끝에 설명이나 이해가 부족한 건 아니라는 판단에 이르게 됐습니다. 상황을 돌아볼 때, 교육에 참여하기로 예정됐던 다수의 사람들이 자리를 뜨고, 딱 3명만이 교육장을 지키고 있던 상황에서 ‘나도 진즉에 사라질걸’하는 마음이 앞섰을 수도 있고요. 혹은 예상했던 교육과 다른 것이 이기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적절한 대답을 찾기 어렵고, 지적받지 않을 대답을 찾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들을 해봤습니다.


다른 교육에서 참여자가 어떤 선택을 하면서도 이유를 ‘모른다’고 밝히면, 그 이유를 함께 찾아보는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인권의 문제가 발생하는 구조를 분석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당사자의 속마음을 읽어보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여튼, 이런 질문과 대화의 과정은 한 발짝 나아가고자 하는 서로의 동의와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관없다’는 말은 참여자의 마음 상태를 읽어보는 요소(표현)가 되었지만, 질문 내용으로는 한 발짝도 들어갈 수는 없는 답변이었습니다. 일상의 대화라면 동문서답 또는 유체이탈 표현이라고 생각했을 텐데요. 참여자의 마음 상태를 짐작해서 ‘대화 거부’로 이해를 했습니다. 하지만 3명이서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한 명만 빼놓고 진행할 수 없는 난처함이 있었지요. ‘그렇군요.’하고 넘어가기 애매한 상황, 어떻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 장면 2 ‘저 먼저 하게 해주세요’

 

교육참여자에게 준비한 질문을 던져, 손을 들거나 답을 먼저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질문을 하기 전에 ‘제가 먼저 답하게 해주세요’라고 참여자 A가 요구했습니다. 어린이 참여자였고, 이 상황에서 다른 어린이들은 ‘뭐야, 말도 안돼’라고 반응하거나 ‘살짝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먼저 답변하게 기회를 달라’는 말이 있을 수 없는 요구는 아닌데,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참여자에게도, 그리고 먼저 기회를 달라고 말한 참여자도 설득할 말을 찾지 못했던 진행자의 난처함이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 본 요구였지만, 엄청 이상한(?) 요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물론 나중에 생각해보니) 고르게 돌아가며 기회를 갖자는 취지에서 특정 참여자에게 기회를 먼저 줄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참여자 A가 활발히 답변한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기회를 먼저 달라는 요구를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애매한 마음이었지요. ‘손을 먼저 드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기준/방식으로 진행 중이었고 ‘이런 방식으로 진행합시다’라고 다시 말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면 거절하는 것이 돼 버리니까요. 거절하면 안된다는 강박이 있었는지,, 결과는 저의 ‘당황’. 여러분은 교육에서 예상하지 못한 참여자의 요구에 어떻게 반응하셨나요? 저는 ‘아아..’ 그리고, 기억이 안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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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ai 그림>


# 장면 3 ‘화를 내도 되는데, 물건을 부수지는 말아요’

 

어린이가 공동생활 공간의 물건을 거칠게 다룰 때, 어린이를 돌보는 비청소년이 “화를 내도 되는데, 물건은 부수지 말아. 물어내야 해요”라고 말하며 제지했습니다. 인권교육이라면 나눌 이야기가 많았을 텐데요. 교육 밖에서 벌어진 대화 속에 뭔가를 파악하기도 전에 상황이 종료돼 버렸습니다. 하지만 불편하게 들렸던 말이라 기억에 남았는데요, 이런 상황이 다시 발생한다면 뭐라고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우선, ‘물건을 부수지만 않으면 화를 어떻게 표현해도 상관없는 것인가?’라는 질문과 착각이 드는 훈육이었습니다. 물건을 거칠게 다루는 행동을 제지할 수는 있겠지만, 화는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이 돼버리니까요. ‘왜’ 이런 행동을 하고, 화가 난 이유에 대한 질문이 일차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질문과 대화는 없었습니다. ‘왜’에 주목하지 않는 선택일 수도 있고요. 어린이와 비청소년의 일상적 관계와 이전 맥락을 충분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순간은 ‘왜 화가 났는지’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물건을 부수지 말라’는 것으로만 대화가 이어졌는데, ‘화는 내도 되는데’는 어쩌다 들어간 말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과거에는 화를 내지 말고 참으라는 훈육이 있었다면, 화를 표현하라는 방향으로 이동한 지 좀 된 것 같습니다. 여전히 ‘화’ 자체를 문제적으로 보는 경향도 있지만, ‘화’라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게 된 것인가 싶고요. 화라는 감정표현도 ‘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혹은 주기 위한) 표현이라는 인식이랄까요. 최근 놀이와 인권교육 중에 진행한 <감정거울 놀이>에서 한 교사 했던 말이 기억나는데요. ‘감정이 나의 기분과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전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이 내 것인 것은 맞지만 표현한 감정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이고, 혹은 그것이 목적이 되기도 하죠. 이렇게 생각할 때, 화의 표현도 더 생각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아니 어쨌든, 다시 이런 상황을 마주해도 짧고도 적절하게 대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건네는 말의 내용보다는 외부의 인권교육가라는 ‘위치’ 때문에 비난으로 들릴까 싶어 겁을 내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요?

 


글쓴이 은채(상임활동가)